자책이 멈추면, 삶은 다시 앞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과거의 장면 한두 개에 오래 머물 때가 있다.
실수였던 순간,
다시 돌아가 고치고 싶은 말,
그때 하지 못한 행동들.
우리는 그것을 반성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생각은 되돌아가 있고,
몸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순 속에서
마음은 스스로를 붙잡아 눌러버린다.
영성에서 말하는 ″자책하지 말라″는
그저 위로의 문장이 아니다.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지금의 나를 묶어두지 말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현실적인 조언에 가깝다.
그때의 나는
그때 가진 마음,
그때 가진 지혜,
그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지금보다 작은 존재였고,
지금과는 다른 조건에서 살았다.
그때의 나를 지금의 기준으로 꾸짖는 일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계속 붙잡는 것에 불과하다.
자책은 성장의 방식이 아니라,
시간을 되감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시도는
결코 성공한 적이 없다.
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했던 이야기
미드 〈미디엄〉에는
이 주제를 조용히 비춰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젊은 시절 파병되었다가
적에게 붙잡힌 한 군인이 있었다.
혼란 속에서 그들을 붙잡아두던 쪽이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고 떠났고,
식량도 없는 채
구조가 언제 올지도 모른 채
기약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돌아가며 먹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 남자는 그 가운데 살아남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시장 후보가 되었고,
선거 기간 동안 그의 과거가 드러났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가 살아남은 방식만을 보고
그를 잔인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그는 살아 돌아온 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사업을 일구고,
오랫동안 번 돈을 익명으로
죽어간 동료들의 가족에게 보내왔다.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그저 버티는 이유로 쓰지 않고,
삶을 바르게 세우는 방향으로 써온 것이다.
그리고 과거가 폭로되었을 때,
그는 숨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았다.
그저 시민들 앞에 나와 말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였다고.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바르게 살고 있다고.”
사람들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그가 쌓아온 현재의 삶을 보았고,
그는 결국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든
그 선택을 한 존재는
<그때의 나>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다른 조건에서,
다른 마음으로,
다른 이해로 살아간다.
영성이 말하는 ″자책을 놓아라″는
과거를 지워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를 돌아보되
그 과거가 지금의 나를 규정하게 두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은 실수로 정의되지 않는다.
사람은 지금 내리는 선택으로 정의된다.
하나의 선택이 또 하나의 선택을 부르고,
그 선택들이 모여
나다운 삶을 만든다.
과거를 붙잡던 손을 놓는 순간,
삶은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앞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은 서로를 이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든다.
그 길 끝에는 언제나
우주가 준비해둔 자리가 있다.
자책을 놓는다는 것은
그 자리를 향해
처음으로, 그리고 용기 있게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 기록자의 노트
자책이 쉬운 이유, 그리고 우주가 새로운 선택을 지지하는 이유
어릴 적 보았던 그 미드는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그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를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무거운 시간에서 돌아와
다시 삶을 이어간다는 것,
그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며
새로운 발을 떼는 일.
그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무거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비난과 비판을 가볍게 던질 수 없다는 것을
그 이야기는 조용히 일깨워준다.
우리는 늘
알지 못하는 것을 근거로
너무 쉽게 판단하려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떠올리면,
내가 나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했던 선택—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을지 모른다.
그 자책의 무게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용기이며,
가장 아름다운 변화다.
영혼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반성은
자신을 꾸짖는 데 있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데 있다.
그 한 걸음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그 움직임이
우리가 머물 자리를 새로 만든다.
대부분의 영성서가
자책을 놓으라고 말하는 이유도
결국은 여기에 있다.
과거에 머무르는 일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발걸음을 떼는 일은
언제나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책은 쉬운 길이고,
새로운 선택은 어려운 길이다.
그럼에도 삶은
그 용기를 향해 언제나 열려 있다.
우주는
그 어려운 길을 향해 내딛는 단 한 번의 움직임을
아주 크게 본다.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마음,
그 무게에서 벗어나려는 결심,
새로운 방향을 향한 첫 걸음—
그 모든 것이
우주에게는 무엇보다 귀한 신호다.
그래서 우주는 말한다.
자책하지 말라고,
후회에 머물지 말라고,
그저 다른 선택을 하라고.
새로운 발걸음 하나가
삶을 바꾸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우주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연서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