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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어린 왕자> Ep.2 – 제2장: 양 한 마리와 상자 속의 비밀

[제2장]

나는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널브러져 있었다.
비행기 엔진은 박살 났고, 물은 고작 일주일치.
말 그대로 <생존 게임>이 시작된 거다.

수리공도 없고, 승객도 없고.
오로지 나 혼자.
죽느냐 사느냐, 그 심각한 타이밍에...

새벽녘, 아주 이상하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내 단잠을 깨웠다.

"저기...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응?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또 비벼봤다.

거기엔 웬 꼬마 녀석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 사막에서 조난당한 꼬마라면,
목말라 죽어가거나 공포에 질려 있어야 정상이잖아?

근데 이 녀석은 너무 멀쩡했다.​

마치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평온한 얼굴로,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는 거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아니... 넌 누구니? 여긴 사막이야.
나 비행기 고장 났다고."

​나는 횡설수설했지만,
녀석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눈치였다.

​오로지 ​<양> 타령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주머니를 뒤져 종이와 펜을 꺼냈다.

​생각해 봐라.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나타나면...

사람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게 되어 있다. 홀린 듯이.

​근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그릴 줄 아는 건 <속이 안 보이는 보아 뱀>이랑
<속이 보이는 보아 뱀> 딱 두 개뿐이라는 거.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작품 1호>를 쓱 그려줬다.
(어른들이 맨날 모자라고 우기던 그 그림 말이다.)

​그런데... 이 꼬마 입에서 나온 말이 나를 기절시킬 뻔했다.

"아니! 아니! 보아 뱀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

뭐라고...? 내 평생 처음이었다.
설명을 안 해줬는데 이걸 알아본 놈은!

"보아 뱀은 너무 위험하고, 코끼리는 너무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곳은 작단 말이야. 난 양이 필요해. 양 그려줘."

와... 소름.

이 녀석, <진짜>를 보는 눈을 가졌다.
나는 갑자기 이 꼬맹이한테 인정받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열심히 양을 그렸다.

"아냐, 이건 골골대잖아. 오래 살 놈이 필요해."

(오...취향 확실하네..)

"이건 뿔이 있잖아. 염소 말고 양!"

(어? 아..그래..? 헐..)

"이건 너무 늙었어. 난 나랑 같이 늙어갈 쌩쌩한 놈을 원해."

나는 슬슬 스팀이 돌았다.
엔진 뜯어보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 꼬맹이 그림 심사를 받고 있다니.

​나는 귀찮음과 짜증을 섞어
대충 <상자>​ 하나를 갈겨 그렸다.
구멍 세 개 숭숭 뚫어놓고 툭 던졌다.


" 자, 여기 있다. 니가 원하는 양, 이 상자 안에 들어 있어."

나는 녀석이 "장난해?"라고 따질 줄 알았다.
그런데 녀석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게 아닌가.

​​

"그래! 이거야! 내가 원하던 게 딱 이거야!"

​​

녀석은 상자 그림을 들여다보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

"이 양은 풀을 많이 먹을까? 우리 집이 진짜 작거든..."

"걱정 마. 내가 아주 조그만 놈으로 넣어 놨으니까."

"진짜네! 어? 지금 잠들었어..."

​​

그 순간,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엔진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시작된 느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이 꼬마.

내 인생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 엉뚱한 어린왕자와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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