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어린왕자>제3~4장: 소행성 B612와 숫자에 미친 어른들
[제3장] "그래서, 너 어디서 왔니?"
나는 녀석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하지만 이 녀석, 내 질문엔 귓등으로도 대답 안 하면서,
지 궁금한 것만 쏟아낸다.
(역시 우주에서 온 녀석들은 다 마이페이스인가?)
내 비행기를 처음 봤을 때 녀석이 던진 말이 압권이다.
"이 고철 덩어리는 뭐야?"
"이건 물건이 아니야.
비행기라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
나는 내가 비행기 조종사라는 걸 꽤나 폼나게 자랑했다.
그런데 녀석은 감동은커녕,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를 지른다.
"뭐? 아저씨도 하늘에서 떨어졌어? 어느 별에서 왔는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아... 이 녀석, 지구인이 아니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너 다른 별에서 온 거야?"
하지만 녀석은 대답 대신 내 고철 비행기를 보며 낄낄거린다.
"저런 걸 타고 멀리서 왔을 리는 없고... 크큭."
[제4장] 어른들은 숫자를 말해줘야 안다
내가 어린왕자의 별에 대해 알아낸 건 그리 많지 않다.
겨우 집 한 채보다 좀 클까 말까 한 별이라니...
사실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으로 아주 작은 별을 찾아내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인다.
<소행성 325호>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는 어린왕자가 온 별이 <소행성 B612>라고 확신한다.
내가 굳이 이렇게 별 번호를 딱지처럼 붙여서
구구절절 말해주는 이유? 별거 없다.
다 늙은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환장하게 좋아하거든.
너희들이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그 친구 목소리가 어떤지,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는 절대 안 묻는다.
대신 이렇게 묻지.
"나이가 몇이니? 형제는 몇 명이고? 몸무게는?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시니?"
이런 숫자 몇 개를 손에 쥐어야만,
그 친구를 <안다>고 착각하는 족속들이니까.
만약 내가 "붉은 벽돌로 지은 예쁜 집에,
창가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엔 비둘기들이 노니는 집을 봤어"라고 하면,
어른들은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강남에 100억짜리 펜트하우스를 봤어!"
라고 하면,
그제야 눈이 뒤집히며 소리를 지른다.
"우와, 정말 끝내주는 집이구나! 대박이다!"
(하... 진짜 노답들. 100억이라는 숫자가 찍혀야만 그 집의 가치를 느끼다니.)
터키 천문학자 양반 에피소드만 봐도 견적 나온다.
1909년에 터키 전통 복장을 입고
"B612를 찾았습니다!" 했을 땐 아무도 안 믿다가,
1920년에 양복을 쫙 빼입고 다시 나타나니
그제야 전 세계 어른들이 "위대한 발견입니다!"라고 찬사를 보냈지.
이게 바로 인간들의 수준이다.
본질보다 넥타이 색깔이 더 중요한 족속들.
내가 이 책에서 B612니 뭐니 숫자를 늘어놓는 건,
순전히 이 책을 읽을 <어른들>수준에 맞춰주기 위해서다.
숫자를 말해줘야 그들은
이 이야기가 <진지한 정보>라고 믿어줄 테니까 말이지.
물론, 진짜를 볼 줄 아는 우리에겐 숫자 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
하지만 어른들은 원래 그런 식이다.
그러니 우리 깨어있는 영혼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해줘야 한다.
그렇게 나는, 이 엉뚱한 꼬맹이의 고향이
집채만 한 작은 별이었다는 것과,
그곳에 아주 예민한 장미 한 송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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