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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어린왕자> 제9장 : 텅 빈 별의 통제광 할배

어린왕자는 장미를 뒤로하고 드디어 우주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325호 소행성에는,
별 전체를 다 덮을 만큼 거창한 망토를 입은
<왕>이 혼자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어린왕자를 보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소리쳤다.

❝ 오! 드디어 백성이 한 명 왔군! ❞

​왕이라는 작자들은 참 이상하다.
자기들 눈에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밑에서
결재를 기다리는 <부하 직원>으로 보이니까.

​어린왕자는 긴 여행 탓에 피곤해서 하품을 쩍쩍 했다.
그러자 왕이 근엄하게 호통을 쳤다.

❝ 어허! 짐의 대전에서 하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당장 하품을 금하노라! ❞​

어린왕자는 어이가 없었다.

❝ 졸린 걸 어떡해요.
긴 여행을 해서 피곤하단 말이에요. ❞

그러자 융통성이라곤 1도 없는
이 늙은 왕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 음, 그럼... 짐이 너에게 하품할 것을
명하노라! 자, 어서 내 앞에서 하품해 봐라! ❞

어린왕자는 기가 막혔다.
누구한테 명령을 안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
이 별의 왕은 뭐든 자기 통제(Control) 아래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지독한 <통제광>이었다.

​어린왕자가 별들을 다 다스리냐고 묻자,
왕은 우주 전체를 가리키며 허세를 부렸다.

❝ 당연하지. 난 절대 군주니까.
우주의 별들도 다 내 명령에 복종한다! ❞

​마침 해 지는 걸 보고 싶었던 어린왕자가 말했다.

❝ 오, 그럼 지금 당장 해가 지게 명령해 주세요! ❞

​그러자 왕은 헛기침을 하며 뻘뻘 땀을 흘렸다.

​​

❝ 에헴... 권위는 이치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법!
해가 지는 명령은... 저녁 7시 40분쯤,
조건이 딱 맞을 때 내려주마! 그때 내 명령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먹히는지 보거라! ❞

​어린왕자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뭐야, 그냥 원래 일어날 일을
자기가 허락한 척하는 거잖아?'

결국 어린왕자는 이 피곤하고 답답한 꼰대 별을 떠나기로 했다.
왕은 떠나려는 그를 붙잡고 다급해져서 소리쳤다.

❝ 너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겠다!
이 별에 늙은 쥐가 한 마리 사는데,
가끔 쥐를 사형에 처했다가
다시 살려주는 판결을 내려라! ❞

​하지만 어린왕자는 쿨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 전 남을 심판하는 건 관심 없어요.
제 자신은 어디서든 심판할 수 있으니까요.
어른들은 참 이상해. ❞


⁂ 연서온의 노트 — 통제라는 이름의 헛소동

처음 이 별의 왕을 봤을 때는 그냥 헛웃음이 났다.
우주가 알아서 자기 궤도대로 굴러가는데,
거기다 대고 자기가 <결재 도장>을 찍었다고
착각하는 꼴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7시 40분에 질 해를 보고,
[내가 지라고 명령했다!]며 뿌듯해하는 저 뻔뻔함이라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일상에서 이 텅 빈 별의 왕과 똑같은 짓을 참 많이 한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타인에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타이밍에게,
어떻게든 내 방식대로 <명령>을 내리고 싶어 안달을 낸다.

​[내가 이렇게 잘해줬으니까 넌 이렇게 변해야 해.]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보상은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떨어져야 해.]

​우리는 끊임없이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변수를
내 좁은 손아귀에 쥐고 통제하려고 한다.
그러다 어쩌다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
[거 봐, 내 계획대로 됐어!]라며 대단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우주는 왕의 명령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우주의 거대한 파동대로, 흘러가야 할 때 흘러갈 뿐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진짜 주권을 가진 자는 누구일까?
우주를 통제하려 헛기침을 하던 꼰대 왕일까?
아니면, 남을 심판하고 통제하는 자리 따위는 필요 없다며
[내 자신은 어디서든 스스로 심판할 수 있다]고 말하고
가볍게 자기 길을 떠난 어린왕자일까.

​진짜 통제력은 타인이나 세상을 내 맘대로 휘두르는 데 있지 않다.
세상이 세상의 속도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 거대한 흐름 안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지난번 우리가 이야기했던,
진짜 [내가 나의 우주의 주권자]가 되는 방식일 것이다.
오늘도 내 안의 통제광 할배가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조용히 7시 40분의 노을을 떠올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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