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n read

각성 이후, 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외로워지는가

영혼이 더 이상 거짓된 소속을 견디지 못할 때

각성은 세상이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사건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머물던 곳에서 더 이상 편안히 숨 쉴 수 없게 되는 일에 가깝다.

예전에는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말이 몸 안에 오래 남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관계의 규칙이 어느 날부터 낯설어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고, 세상도 전과 다름없이 움직이는데
나만 익숙한 행성에서 한 발 밀려난 것처럼 느껴진다.

각성 이후의 외로움은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사람들 속에 섞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오며 수많은 집단의 언어를 배운다.

어떤 때 웃어야 하는지,
무엇을 성공이라 불러야 하는지,
누구를 부러워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참아야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지.

그 언어를 잘 익힐수록 세상에 적응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영혼의 감각이 깨어나면, 그동안 자연스럽다고 믿었던 것들 사이에서 미세한 불일치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말은 다정한데 마음은 차갑고,
칭찬은 넘치는데 존중은 없으며,
함께 있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자기 자신을 접어야 한다.

이전에는 머리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을 몸이 먼저 알아본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고,
어떤 장소에서는 숨이 얕아지며,
멀쩡한 대화 속에서도 마음 한가운데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때 많은 사람은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예민해진 것은 아닐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나만 세상과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감각이 예전보다 정확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고독도 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 시작했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거부를 더 이상 배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각성한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는 것은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사람을 더 깊이 보기 때문에 쉽게 섞이지 못할 때가 많다.

그 사람의 말 뒤에 숨은 두려움이 보이고,
친절 안에 섞인 통제가 느껴지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소유와 침범을 알아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폭로하고 싶어지는 것도 아니다.

각성은 누군가를 심판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더 이상 내 안에 들여놓을 수 없는지 아는 감각에 가깝다.

그래서 파동형 인간은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조건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나이, 직업, 학력, 국적, 재산, 종교, 성별, 사회적 위치.

지구는 이런 정보로 사람을 빠르게 분류한다.
그러나 영혼의 감각은 전혀 다른 것을 본다.

이 사람이 자기 말에 얼마나 진실한가.
다른 존재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가.
자신의 두려움을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는가.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가.
사랑을 말할 때 실제로 상대의 자유까지 존중하는가.

파동형 인간이 알아보는 것은 의견의 일치가 아니다.

존재와 말과 행동 사이의 일치다.

같은 세계관을 말해도 결이 전혀 다를 수 있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어도 단 한 문장 안에서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영혼은 이력서보다 먼저 알아본다.


문제는 오래된 소속이 끝난 뒤에도 새로운 소속은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전 세계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데,
다음 세계의 사람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시기.

이 사이의 공백은 길고 춥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혼자이고,
혼자 있을 때는 오히려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으면서도
다시 자신을 줄이고 설명하고 번역해야 하는 곳이라면 차라리 들어가지 않게 된다.

이 시기를 실패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외로움은 관계를 잃어가는 과정만이 아니다.

관계의 기준이 바뀌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나를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머물렀을 수 있다.
이제는 나를 받아준다고 말하면서 나의 감각을 부정하는 곳에는 머물 수 없다.

과거에는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조정했을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을 잃어야 유지되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기 어렵다.

과거에는 소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을 수 있다.
이제는 그 소속 안에서 내가 실제로 살아 있는지를 묻게 된다.

외로움은 커졌지만, 거짓된 친밀감에 자신을 내어주는 일은 줄어든다.

이것이 각성 이후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다.

그러나 각성 이후의 외로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래된 소속이 비워진 자리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의 문법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This post is for subscribers on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