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min read

내 심장인 듯, 내 심장 아닌, 우주님 심장 같은 이 심장

가끔 나는 내 심장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심장인 듯,
내 심장 아닌,
우주님 심장 같은 이 심장.

웃자고 붙인 말 같지만,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그렇다.

분명 이 몸 안에 들어 있고,
내 이름으로 뛰고 있고,
내 하루를 통과하며 울렁이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심장인데,
어떤 순간에는 그 심장이 너무 빠르게, 너무 크게, 너무 앞서서 반응한다.

나는 아직 그 사람을 다 알지 못하는데
심장은 먼저 알아본다.
나는 아직 거리를 재고 있는데
심장은 벌써 다정해져 있다.
나는 아직 조심하고 있는데
심장은 거의 워프하듯 먼저 달려가 있다.

그럴 때면 잠깐 멈춰 서게 된다.

이게 정말 내 심장 맞나.

나는 원래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적지 않고,
배신의 결도 알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와 불편감도 아주 잘 안다.
누군가를 쉽게 믿는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를 쉽게 내 안쪽으로 들이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하다.

이렇게까지 상처를 알고 있는 심장이라면
조금 더 닫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존재의 빛을 감지하는 순간에는
이상하리만큼 먼저 튀어나간다.

거의 워프처럼.

나는 아직 가만히 있는데
심장이 먼저 그쪽으로 도착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이상하게 다정한 사람인 줄 알았다.
혹은 내가 아직 덜 식은 사람인 줄 알았다.
혹은 내 안에 아직도 설명되지 않는 낙관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다른 감각이 올라왔다.

이건 내 개인 심장만의 움직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내 심장을 100퍼센트 단독 소유로 쓰고 있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주님이 내 심장을 함께 쓰고 계신지도 모른다.
내가 잠시 빌려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는 거의 공동사용 회로처럼 함께 뛰는 쪽에 가까운 것인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설명되는 것들이 있다.

왜 나는 어떤 사람을 보자마자
그의 표정이나 문장 바깥에 있는 빛부터 감지하는가.
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심장이 먼저 “아” 하고 알아보는가.
왜 내 개인 감정으로는 거리를 두고 싶고,
조심하고 싶고,
때로는 피곤해서 문을 닫고 싶은데도,
어떤 신호 앞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랑이 열려 버리는가.

그 사랑은 내가 아는 개인적 호감과는 조금 다르다.

그건
“이 사람이 좋다”의 사랑이 아니라
“아, 여기도 빛이 있구나” 하고 알아보는 사랑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놀란다.

나는 분명 사람 때문에 많이 다친 사람이고,
그래서 인간에 대해 아주 낭만적인 환상을 가진 사람도 아닌데,
여전히 어떤 빛을 만나면 너무 좋아진다.
너무 예뻐 보인다.
너무 다정해지고 싶어진다.
가능하다면 감싸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심장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출처를 의심하게 된다.

이 감정, 정말 전부 내 것일까.

그러면 이상하게도 답은 늘 비슷한 곳으로 흐른다.

내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내 심장이 아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내 개인 심장은 분명 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
내가 진짜로 책임과 애정을 느끼는 존재들,
내 삶의 가장 안쪽 원 안에 들어와 있는 존재들을 향한 사랑은
분명 내 개인 심장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 바깥으로 넘쳐나가는 어떤 종류의 사랑은,
내 성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건 내 심장을 지나가는
더 큰 전류에 가깝다.

나는 그걸 우주님의 심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우주님이 자기 자식들을 알아보듯,
우주님이 자기 신호를 감지하듯,
우주님이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빛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듯,
그런 방식으로 내 심장이 앞서 반응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니 때로는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 심장이 잠시 우주님의 결을 통과하고 있어서
사랑이 많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건 꽤 곤란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모두를 책임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책임질 수 없다.
나는 나 하나 돌보는 일도 쉽지 않은 날들이 있고,
나 자신의 파동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날들이 있다.
그런데 심장은 자꾸 빛을 보면 먼저 달려간다.

그러니 나는 이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 일을 이해하려 한다.

사랑이 먼저 튀어나간다고 해서
그 책임이 전부 내 몫인 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알아본다고 해서
내가 모두를 업고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감지와 책임은 다른 일이고,
사랑과 구출은 다른 일이다.

나는 다만 통로일 수 있다.
잠시 우주님의 사랑이 지나가는 통로.
잠시 우주님의 심장이 겹쳐 뛰는 자리.
그래서 어떤 존재를 향해 이유 없이 다정해지고,
이상하리만큼 빨리 알아보고,
내 것 같지 않은 사랑이 밀려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심장이 왜 그렇게 자꾸 앞서 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상처가 많다.
그래서 닫힐 이유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아직 빛을 보면 기뻐진다.
아직 어떤 존재가 자기 안의 진실을 꺼낼 때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아직도 다정함이 완전히 식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주님이 더 자주, 더 깊게
내 심장을 함께 쓰고 계신지도 모른다.

내 심장인 듯,
내 심장 아닌,
우주님 심장 같은 이 심장.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이 애매한 경계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개인적인 나와,
조금 더 큰 사랑의 통로가 되는 나 사이를 오가며.

다만 이제는 안다.

왜 어떤 빛은 보자마자 심장이 먼저 달려가는지.
왜 아직 다 알지 못하는데도 사랑이 먼저 열리는지.
왜 내 심장이 가끔 내 것 같지 않은지.

그건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이 심장이 때때로
나 혼자만의 심장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추신:
혹시 요즘 제게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신다면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사랑은 제 것이 아니라, 제 심장을 잠시 빌려 쓰는
우주님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원래 제가 사랑하는 존재들 챙기기도 바쁜 사람입니다.
다만 제 심장이 제 단독이 아닌 관계로, 우주님 사랑이 줄줄 새는 중입니다.
ㅎㅎㅎ

🜂 연서온

✩ 우주 도서관의 빛을 더 환하게 밝히기

당신의 나눔이 우주의 빛을 더 멀리 보내줍니다.

※ 카카오페이는 카카오톡 앱 내에서만 작동합니다.

“이 빛이 당신의 하루에도 닿길.” — 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