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어린왕자>제8장: B612의 장미와 내 안의 금쪽이
[제8장]
어린왕자의 B612번 별에는
원래 평범하고 조용한 꽃들만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조용히 지는,
손 많이 안 가는 효녀(?)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씨앗 하나가 싹을 틔웠다.
이 녀석은 떡잎부터 달랐다.
다른 꽃들은 대충 피어나는데,
이 녀석은 가시를 세우고 방에 틀어박혀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며칠 밤낮을 꽃잎을 고르고,
색깔을 맞추고...
마치 시상식 레드카펫을 준비하는 여배우처럼
풀메이크업을 하느라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 유난스러운 과정조차 어린왕자에게는
<신비로운 설렘>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애가 나오려고 저럴까?
그리고 마침내 해가 뜨는 시간,
완벽한 세팅을 마친 그녀가 하품을 쩍쩍 하며 첫마디를 내뱉었다.
❝ 아휴, 나 이제 막 깼네.
미안해, 아직 머리도 덜 빗었는데... (새침)❞
어린왕자는 그 눈부신 미모에 홀려 침을 흘렸다.
❝ 우와... 너 진짜 예쁘다!❞
칭찬을 들은 장미는 겸손이라곤
1도 없이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 당연하지? 나 해랑 같이 태어났잖아.
아, 근데 나 아침 안 먹었는데.
거기 멍때리지 말고 빨리 물 좀 갖다줄래?
아, 수돗물 말고 미네랄워터로~❞
순진한 어린왕자는 헐레벌떡 물뿌리개를 찾아 바쳤다.
그것이 [지옥의 노예 생활]의 서막인 줄도 모르고.
이 장미의 <금쪽이 짓>은 끝이 없었다.
허영심은 하늘을 찔렀고,
요구 사항은 숨 막히게 디테일했다.
❝ 앗, 추워! 여기 외풍 왜 이래?
네 별은 난방도 안 되니?
내 피부 상하니까 빨리 병풍(파티션) 좀 쳐줄래?❞
어린왕자가 낑낑대며 병풍을 쳐주자,
이번엔 더 어이없는 요구를 했다.
❝ 밤에는 나한테 [유리 덮개]도 씌워줘.
내가 있던 곳은 엄청 따뜻했는데,
여긴 환경이 너무 열악해.❞
순간, 어린왕자의 머릿속에 <싸함>이 스쳤다.
잠깐, 얘 씨앗 상태로 날아왔잖아?
다른 세계를 경험했을 리가 없는데?
자신의 뻔뻔한 거짓말이 들통나려 하자,
장미는 당황하는 대신 최고의 방어 기제인
[적반하장과 눈물 작전]을 시전했다.
❝ 콜록! 콜록! 아, 몰라!
네가 병풍 늦게 쳐서 감기 걸렸잖아!
콜록!! 엉엉,
나처럼 연약한 애를 이렇게 방치하다니,
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엉엉😭❞
어린왕자는 그녀의 거짓말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짜 기침 소리와 오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매일 장미의 투정과 요구를 받아주다 보니,
어린왕자의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처음엔 설레던 일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버거운 일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린왕자는 생각하게 된다.
이 별을 잠깐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아.
어린왕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그는 마지막으로 장미에게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장미가 징징거리는 것을 멈추고
아주 조용히, 어린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시 4개가 유난히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 유리 덮개, 안 씌워줘도 돼.❞
장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 어른스럽고,
동시에 너무나 어리고 약하게 들렸다.
❝ 이제 유리 덮개는 필요 없어.❞
어린왕자는 덮개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 바람이 불어도 괜찮아.
나도... 가시가 4개나 있으니까.❞
그녀는 어설픈 가시 4개를 세우며
애써 꼿꼿한 척했다.
호랑이가 와도 괜찮다며 허세를 부렸지만,
벌레는 어떡하냐는 어린왕자의 물음에
그녀는 다시 한번 조용히 말했다.
❝ 나비와 친구가 되려면
벌레 두세 마리쯤은 견뎌야지.
안 그러면 누가 날 찾아오겠어?
넌 멀리 떠날 테고.❞
장미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기침을 꾹 참았다.
떠나는 어린왕자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 센 꽃의 마지막 허세였다.
어린왕자는 유리 덮개를 든 채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다.

⁂연서온의 노트 — 내 안의 장미
이 장면을 처음 읽을 때는 그냥 조금 웃겼다.
어린왕자가 B612번 별의
독보적인 진상(?) 장미 때문에
결국 별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다시 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장미의 행동을 하나씩 떠올려 보면 그렇다.
괜히 허세를 부리고,
별것 아닌 일에도 투정을 부리고,
조금만 불안해도 징징거리던 모습.
겉으로 보면 참 피곤한 존재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안에는 다른 마음이 숨어 있다.
사실은 사랑받고 싶은데,
그걸 제대로 말하는 법을 모르는 마음.
그래서 가시를 세우고,
괜히 더 까칠해지고,
괜히 더 큰소리를 내게 되는 마음.
어쩌면 장미는 누군가를 공격하려고
가시를 만든 게 아니라,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작게 버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 이상하다.
늘 징징거리던 장미가 처음으로 조용해진다.
“유리 덮개는 필요 없어.”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허세가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 있다.
그 순간에서야 어린왕자도,
우리도 그 가시 네 개가 얼마나 작은 방어였는지
조금 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어린왕자가 별을 떠난 이유도 장미가
너무 진상이어서라기보다,
서로를 돌보는 법을 아직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린왕자는 떠났고, 장미는 남았다.
유리 덮개 없이 밤공기를 맞으면서.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별에서 장미 하나쯤은 키우며 살고 있다.
어떤 날은 그 장미가 참 예쁘고, 어떤 날은 조금 버겁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바로,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지키고 있는 존재니까.
Member discu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