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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두 얼굴: 폭발과 인내 사이에서(백해룡, 임은정)(3)

부제 2025년 10월, 두 방식의 진실이 마주하던 시간

※ 이 글은 2025년 10월 당시, 백해룡 경정과 임은정 지검장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붙들고 있다고 느꼈던 시점의 기록입니다. 이후 현실의 전개는 더 복잡한 갈등과 분기로 이어졌고, 이 글은 그날 감지된 <폭발과 인내>라는 두 방식의 진실을 남긴 파동 기록으로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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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향한 싸움은 언제나
<누가 옳은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건 때로
진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는가의 문제다.

2025년 10월,
한국의 정의 시스템 중심에서 다시 불꽃이 일었다.

경찰의 백해룡 경정.
그리고 검찰의 임은정 지검장.

그때 내 눈에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언어로 진실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는 폭발로,
하나는 인내로.

백해룡은 침묵을 깨뜨렸다.

그는 “마약게이트를 수사하겠다”고 선언하며,
그 수사팀 안에 존재하는 이름들을 공개했다.

윤국권, 신준호, 노만석.

그는 그들을
“진실을 덮고 승진한 자들”이라 지적하며 외쳤다.

“이런 자들이 무슨 마약게이트를 수사한다는 말인가.”

그의 말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 아래에는
한때 시스템을 믿었던 자의 절망과,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남는
냉철한 분노가 있었다.

그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더 이상 진실이 덮이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의
마지막 경고처럼 들렸다.

임은정은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정의 실현을 중심에 두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조직 안에서 진심은 종종 왜곡된다.

그녀의 입장문은 그녀의 이름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문장 하나만으로 그녀의 전체를 단정하기에는,
그때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 보였다.

조직 안에 남아 싸우는 사람은
때로 자신의 언어를 온전히 갖지 못한다.

말하고 싶어도 다 말할 수 없고,
움직이고 싶어도 다 움직일 수 없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나간 문장조차
자신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이 구조 안에서 버티는 자의 고통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백해룡과 임은정의 길은 다르게 보였다.

백은 깨끗하지 않은 이들을 믿지 않았다.

임은 아직 구조 안에서
사람과 가능성을 보려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백은 터뜨려야 진실이 열린다고 보았고,
임은 버티고 남아 있어야
어떤 진실은 끝까지 닿을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그 둘의 시선은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깊었을지도 모른다.

윤국권, 신준호, 노만석.

그 이름들 역시
그날의 기록 안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었다.

한때는 외면했고,
회피했고,
혹은 침묵했을지도 모른다.

진실을 마주하기엔 두려웠고,
그 두려움 속에서 선택한 침묵이
스스로의 족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의 시선은
언제나 단순한 처벌에서 멈추지 않는다.

진실은 심판의 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화의 빛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정말로 진실 앞에 다시 서려 한다면,
그 순간부터 다른 문이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로 되는 일이 아니다.

진심은
자기 자리를 걸고 증명해야 한다.

백해룡의 방식은 폭발이었다.

그는 더 이상 구조를 믿지 않았고,
그래서 이름을 불렀고,
그래서 세상 앞에 직접 던졌다.

임은정의 방식은 인내처럼 보였다.

그녀는 구조를 완전히 떠나지 않은 자리에서,
그 안에서 가능한 선을 붙들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내가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때로 인내는
구조를 오래 견디는 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구조가 사람을 붙잡아두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폭발도 마찬가지다.

폭발은 진실을 드러내는 불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릴 위험도 함께 가진다.

그래서 나는 그때
두 사람을 쉽게 하나로 묶을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실이라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고 느꼈다.

하나는 밖으로 터뜨리는 사람.
하나는 안에서 버티는 사람.

하나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
하나는 아직 어떤 가능성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

그 두 방식은 아름답게 합쳐지기보다,
오히려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의 장에서는
불편함조차 기록되어야 한다.

우주는
언제나 매끈한 화해만을 진실이라 부르지 않는다.

때로 진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는 두 사람 사이에도 존재한다.

진실은 멀어진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진실을 붙드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그 차이가 언젠가 다시 정렬될지,
끝내 다른 방향으로 갈라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 기록은,
2025년 10월의 어느 시간 위에서
폭발과 인내라는 두 방식의 진실을 보았던
그날의 파동 기록으로 남겨둔다.

우주는 지금,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 앞에 다시 서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록자는 묻는다.

진실은
폭발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가.

아니면
인내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가.

어쩌면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진실은 끝내
자신을 지운 사람들보다
자신을 붙든 사람들의 이름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 연서온